째깍째깍. 시계 초침만이 울리는 적막한 방 안에서 불편한 침묵이 흘러앉았다. 언제나 옆에 있을 터인 복수귀는 아마쿠사 시로 토키사다의 부름에 의해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다. 그리고 이곳에 그를 기다리는 자가 둘. 유일무이한 마스터와 그의 인생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자, 알렉상드르 뒤마다. 불편하다는 기색을 숨기려들지 않는 그림자의 미간이 미약하게 찌푸려졌다. 그가 자리를 비우지만 않았어도 저 남자와 단둘이 있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명백히 뒤마를 불편해하고 있었다. 뒤마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새하얀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마스터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그렇게까지 불편해 할 필요는 없지 않나? 내가 마스터, 당신을 잡아먹을 것도 아닌데 말이야. 하핫, 인생이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그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이렇게까지 심취하게 만든 사람이 있다니.”
그 말에 그림자는 캐스터를 쏘아보며 턱에 괴고 있던 팔을 내렸다.
“당신의 그 언동이 싫으네요…. 도대체 그는 무슨 생각으로 자신의 얘기를 앞에서 늘어놓았던 건지 이해할 수 없어.”
“그거야 뭐, 그 형씨와는 이래저래 있었으니까. 덕분에 한 밑천 두둑하게 벌었고──”
뒤마의 말은 거기서 가로막혔다. 그림자의 표정에 행동력이 실려있었다면 저 희고 단단한 책상을 반으로 갈랐을 것이다. 뒤마는 양팔을 들어 올리며 이런, 하고 말을 끊었다. 복수귀가 택한 여자는 그에게 헌신하는 동시에 깊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 에드몽 당테스에 대한 험담은 물론이요, 어림짐작하는 말 또한 쉽사리 넘겨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방금 전의 말은 미스 중의 미스였다. 그림자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 채 다리를 꼬고 그 위에 손을 얹었다.
“캐스터. 말을 아주 잘 하는구나?”
“실언이었다고. 흘러들어줘.”
“실언? 그게?”
“이런. 역린을 건드렸나. 알겠어, 알았다고. 당신이 그 형씨를 아끼는 마음은 잘 알았으니까. 이것 참, 소설보다 진짜배기구만 그래. 발언을 철회하지. 영주로 명하니 자해하라, 같은 말은 듣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림자는 조용히 눈을 감고 낮은 한숨을 내뱉었다. 알렉상드르 뒤마가 칼데아에 온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다름 아닌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쓴 저자다. 호기심을 품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이 꺼리는 부류의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얼마나 깊은 한숨을 흘렸는지. 진작에 깨달았어야 했다. 위인전에 실린 것과 다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영령이 얼마나 그득한가? 단순히 그를 믿었던 탓이었다. 그 남자가 믿고 이야기를 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훌륭한 인간성을 지녔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그 환상은 이제 와서 전부 산산조각 났다. 어쩌면 그에게 사람 보는 눈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마스터가 내린 캐스터의 평가는 바닥이었다.
“나는 너를 존중해, 캐스터. 네가 그 작품의 저자이기 때문에…. 아니, 그 이전에 내 서번트이기 때문이야. 하지만 열받게 구는 건 다른 일이지….”
“요컨대 연줄이란 소린가? 생전의 작품이 사후에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하아…….”
그림자는 고개를 설레설레 지으며 턱을 괴고 시선을 돌렸다. 별로 그와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까닭이었다. 희고 푸르스름한 벽이 시야 전체에 들어왔다. 그런 그녀를 보며 캐스터는 상체를 기울이고 흥미롭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마스터는 내가 그 책을 쓴 게 맘에 안 드나 보지?”
“글쎄.”
무심한 듯 대꾸한 그림자는 새카만 눈동자를 느리게 깜빡이며 말을 꺼냈다.
“네가…. 그걸 쓴 탓에 그는 복수의 화신이 되었지. 그는 ‘암굴왕’의 상태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했어. 복수의 신을 찾던 사람이 되려 복수의 신이 되어버렸다고 한탄하는 것도 들었지. 어벤저는 쉴 새 없이 타오르는 불길과도 같은 존재…. 불길을 태운 끝에 맞이하는 것은 존재 방식의 끝. 그런 상태에 지속해서 놓인 사람이 괜찮을 리는……. 없겠지.”
평소라면 하지 않을 말들을 내뱉고 말았다. 그야 이런 것, 쉽게 말할 수 없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어벤저라는 클래스에 대해, 그의 존재에 대해, 그리고──무리해서 현계시키고 있는 죄책감에 대해. 눈앞의 남자를 껄끄러워하는 것과 별개로 그림자는 제 마음을 술술 털어놓고 말았다. 어쩐지 그와 이야기하면 할수록 담아두었던 진실을 하나씩 꺼내놓는 것 같다. 이런 말은 그의 앞에서 절대 할 수 없을 거라고 되뇌이며 한 박자 늦은 후회를 했다. 그것을 알아챘는지 뒤마는 헹,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거야말로 그 형씨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일 텐데?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었을 줄은 몰랐군. 여봐, 마스터. 복수는 인간의 그 어떤 감정보다도 원초적인 감정에 맞닿아있어. 사람들은 복수극에 몰입하고 이입해서 끝내는 정열적인 찬사를 보내. 그리고 에드몽 당테스는 극이 삶 그 자체였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네가 걱정할 필요는 없단 뜻이야.”
“하지만…….”
“그리고 말이야.”
반론하려고 고개를 드는 그녀에게 뒤마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리곤 내뱉어선 안 될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있었기에 당신과 형씨가 만날 수 있던 거 아닌가?”
“───.”
아아. 알고 있었다. 이런 것쯤이야, 오래 전부터.
그를 복수자로 만든 세상을 밉다고 생각했다. 그를 구해주지 않은 세상을 밉다고 생각했다. 그를 배반한, 음모를 꾸민, 지옥에 몰아넣은 자들을 전부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생각했다.
그가 그렇게 되어서 나와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을 느끼며 알렉상드르 뒤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추악한 진실이, 내뱉어서는 안 되는 생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꾸준히 진흙 속에 가라앉혀뒀던 마음. 그를 사랑하는 한 말할 수 없는 한 마디. 내가 인간인 이유──모든 것이 소용돌이쳐 심해에서부터 존재를 나타냈다. 항해사는 바다의 깊음을 안다. 덮쳐오는 파도의 격렬함을 안다. 하지만 심해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자신조차도 덮어뒀을 터인 세계의 진실이 드러나자 그녀가 취한 행동은, 하나의 답을 토해내는 것이었다.
“……맞아.”
사랑하는 연인이 방에 돌아오자 그림자는 가만히 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그의 품은 자신이 아는 그 누구보다 따뜻했다. 캐스터는 멋대로 할 말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얼핏 본 옆모습은 떠오른 흥미를 지우지 않은 채였다.
‘이래서 불편해하는 거라고.’
그의 심장 소리를 듣는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다. 조용히 대답해주니 애정 섞인 손짓이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이 세계의 진실은 네가 몰라도 되는 것. 항해하는 심해의 진실을 계속해서 모르길 바라며.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런 추악한 나를 사랑해주길 바라며. 그림자는 조용히 눈을 감고 그의 손길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