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 Sauveur
작성일
2024. 10. 19. 05:26
작성자
인류 최후의 마스터

"다시 한번 물을게. , 나를 두고 갈 생각이지?"

"……그래. 네 말이 맞다."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폐기공의 주인이 한 발짝 앞으로 내딛자 두 사람은 지면을 잃고 허공으로 낙하한다. 떨어진다. 끝이 보이지 않는 그림자 속으로.

 

"그림자, 물러나라! 가까이 와서는 안 된다. 내 불꽃은 너를 불사를 수도…."

"그딴 건 알 바 아냐!"

"……!"

"너 때문이야. 전부 너 때문이야. 나는 네가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는데. 지금까지 참고, 참고, 참고, 또 참았는데. 그런데 이제는, 널 두고 나아가라고? 나아가? 여기서 더……?"

 

푸른 불꽃이 긴 머리카락을 땔감으로 삼아 불타오른다. 그녀는 자신을 태우려는 불꽃에도 아랑곳 않은 채 복수자에게 원망의 말을 내뱉는다. 기나긴 시간을 숨겨온 본심, 육체에 번지는 불꽃, 미련을 남긴 이별의 끝자락. 암굴왕은, 그래. 답지 않게 당황했다. 고결한 각오로 유지한 평정심이 흔들린다. 얼굴에 떨어진 뜨거운 눈물이 말문을 틀어막는다.

 

"있잖아. 내가 복수자가 되지 못할 것 같아? 나는 할 수 있어. 이 분노를 힘으로 바꿀 수 있어. 세계를 불태울 수 있어. 전부 죽이고 파괴해서, 아무것도 남지 않을 정도로 부숴버리고——"

 

하지만 분명 복수자의 소질이 있을 여자는 그 이상의 잔혹한 말은 내뱉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니. 못할 거다."

"……?"

"너는, 그러지 못할 거다."

"………. ……."

"알고 있잖나."

 

추락한다. 추락하는 것 같다. 자신만이 저 깊은 그림자 속으로 추락하고 있을 것이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부드러운 말과 함께 따스한 손길이 뺨에 맞닿았다. 그것은 너무나도 따뜻해서, 목이 녹아내릴 정도의 뜨거운 절망과 자괴감이 온몸을 집어삼켰다. 자기모순에 당착한 영혼은 파괴를 거듭하며 스스로를 죽인다. 그림자는 비로소 이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동시에 자신의 미래를 예감한다. 나는 분명, 그가 없는 그랜드 오더를 완수하지 못할 것이다. 그 끝에 있는 것은 실패라는 이름의 죽음보다 끔찍한 형벌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발자취를 부정하는 결말이, '그림자'라는 인간을 죽여버리는 말살이 다가온다. 하지만 지금은 그딴 결말보다 눈앞의 남자가 더욱 중요해서 오갈 데 없는 울분만을 터트리는 것이었다.

 

"………마음대로 해……."

 

잡았던 멱살을 놓았다. 손아귀에 쥐었던 옷깃이 힘없이 빠져나간다. 그림자는 이별의 전언을 남기지도 않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그저 깊은 꿈의 연결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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